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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 가장 큰 변화]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라” (누가복음 2:7)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비트코인은 여전히 ‘투기 자산’으로 먼저 떠오른다. 가격 그래프, 급등과 급락, 단기 수익 같은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이야기하면, 아직도 “위험하지 않나?”, “도박 아니야?”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시작을 돌아보면, 이런 인식이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애초부터 비트코인에게 화려한 데뷔 무대같은 것은 없었다. 만약 비트코인이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이나 세계적인 대학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유명 경제학자들의 지지와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등장했다면, 지금처럼 끊임없이 의심받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비트코인은 신원을 특정할 수 없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인물이 공개한 9쪽짜리 백서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처음에는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았고 주목받지 못한, 아주 작은 시작이었다.

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도 많이 닮아 있다.

예수님은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허름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 축하 인파도, 어떤 환영식도 없었다. 여관에 머물 방조차 없어서 구유에 누이신 채로 이 땅에 오셨다. 인류의 구주로 오신 분의 시작치고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그 탄생이 위대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왜 하필 저런 모습으로 오셨을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비트코인도 비슷했다.

초기에는 소수의 개발자와 기술 마니아들만 관심을 가졌고, 일부 다크웹 거래에 사용되면서 왜곡된 이미지가 씌워졌다. 주류 금융권과 언론은 대부분 무시하거나 비웃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 무관심 덕분에, 비트코인은 조용히 성장할 수 있었다. 비트코인에게는 외부의 통제도 없었고, 기득권의 보호도 없었다. 그 대신 수많은 실험과 실패, 공격과 논쟁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해 왔다. 광야 같이 거친 환경 속에서, 시스템의 신뢰성과 내성이 하나씩 검증되고 자라며 버텨온 것이다.

만약 비트코인이 처음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면, 아직 연약했던 시절에 제도와 권력에 의해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의 이해관계 속에서 쉽게 눌려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변방에서 자라났다. 뒷골목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작은 서버들 위에서,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의 참여 속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위기를 견디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비트코인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글로벌 기업과 기관들이 참여하고, 국가 차원에서도 논의되는 자산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투기 아니야?”
“위험한 거 아니야?”

이 모습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들었던 말과도 닮아 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 (요한복음 1장 46절)

출신이 초라하면, 본질도 낮게 평가받기 쉽다. 사람들은 겉모습과 배경으로 먼저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단순한 투자 상품을 넘어선다. 인류는 불을 통해 에너지를 다루는 법을 배웠고, 그 에너지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비트코인을 통해, 인간의 노동과 시간, 신뢰와 노력이 담긴 가치를 디지털 네트워크 위에 안전하게 저장하고 이동시킬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

비트코인은 불과 같이 인류 문명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도구이다. 비트코인은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글로벌 가치 저장소이자, 중앙 권력에 의존하지 않는 화폐 시스템이다.

예수님께서 율법 중심의 신앙을 넘어 믿음과 은혜의 길을 열어주신 것처럼, 비트코인은 중앙화된 금융 구조의 한계를 드러내며 보다 투명하고 검증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물론 둘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예수님은 구원의 주이시며, 비트코인은 새로운 기술이고 프로토콜이다. 그러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어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흐름은 분명 닮아 있다.

둘 다 처음에는 약해 보였다. 오해받았고, 무시당했고, 조롱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안에 담긴 가치가 조금씩 드러났다.

비트코인은 아직도 역사적으로 보면 매우 젊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막 청소년기에 들어선 기술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삶과 글로벌 금융 구조에 영향을 주고 있다. 마굿간에서 시작된 복음이 구원의 역사를 바꾼 것처럼, 변방에서 태어난 비트코인 역시 앞으로 더 깊고 넓게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작이 초라했다고 해서, 그 결말까지 초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종종 가장 작은 곳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자리에서, 가장 큰 변화를 시작하신다. 그리고 그 방식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장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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