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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과 각성, 되돌릴 수 없는 인식의 전환]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기독교 신앙에서 ‘거듭남’은 단순한 감정 변화나 윤리적 결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상태가 바뀌는 사건이다. 예수를 믿는 순간, 사람은 이전과 동일한 환경 속에 살아가지만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점진적으로 쌓여 가는 과정이라기 보다, 영단번적으로 일어나는 전환에 가깝다. 그리고 그 전환은 취소될 수 없다. 교리적으로 구원은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이며, 다시 ‘거듭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험들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가격, 투기, 기술 트렌드 중 하나로 접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비트코인의 한 특성이 선명하고 날카롭게 인식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탈중앙화, 비가역성, 고정된 공급, 검열 저항성, 그리고 무엇보다 "완전한 소유권과 국가로부터의 자유". 이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그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단순히 정보를 하나 더 아는 상태가 아니라, 화폐와 신뢰, 그리고 국가와 자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는 경험이다. 비트코인의 본질과 가치를 깨닫는 ‘각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이 각성 이후에는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인플레이션, 금융 위기, 화폐의 역사적 실패들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인식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을 본질적으로 이해한 사람은 다시 “중앙이 통제하는 화폐가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다. 이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이해한 결과다.

한 번 본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듯, 한 번 이해한 구조는 잊고 싶다고 다시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해나 통찰의 범위를 넘어, 육체의 감각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거듭남과 비트코인의 각성은 모두 되돌릴 수 없는 인식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전 상태로 회귀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를 경험해 본 자들의 공통된 간증이다. 이는 한편으로 매우 놀랍고 신비한 체험으로 기억됨과 동시에 그것이 진짜 전환이었음을 방증한다. 변화가 취소 가능하다면, 그것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거듭남과 각성은 모두 하나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이 세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작동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어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의 실존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다시 이해하게 되고, 어떤 이는 비트코인을 통해 경제와 화폐의 본질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이해는 한 번 일어나면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이 진짜 변화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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