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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어려운 숙제, 복음전도와 오렌지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복음과 비트코인은 공통적으로 이를 모르는 이에게 전하고 이해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근거가 부족해서도 개념이 지나치게 복잡해서도 아니다.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하지만 둘 다 너무나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기 때문이다. 불신자에게 예수를 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 하나를 더 소개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세상을 해석해 온 방식과 삶의 방향 자체를 뒤집는 일에 가깝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생각 몇 가지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정신과 마음의 세계가 한 번에 뒤집어지는 충격에 가깝다.

비트코인도 다르지 않다. 비트코인을 모르는 사람에게 비트코인을 전하는 일은 새로운 투자 상품 하나를 권하는 일이 아니다. 비트코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기존의 금융 질서와 돈에 대한 상식, 그리고 국가와 은행을 신뢰해 온 구조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선택이다. 익숙한 질서를 떠나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라는 요청은 상대에겐 매우 부담스런 제안일 것이다. 그래서 두 메시지는 모두 쉽게 거부당한다.

하지만 비트코인과 기독교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 자체는 놀라울 만큼 단순하고 쉽다. 비트코인은 종이와 잉크 또는 중앙은행 디비의 숫자 몇 개로 무한히 늘어나는 법정화폐의 문제를 지적한다. 인간과 권력이 통제하는 돈은 결국 가치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고발이다. 기독교는 죄에 빠진 인간은 결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며, 반드시 외부로부터의 구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두 주장 모두 문제를 복잡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할 정도로 단도직입적이다.

그리고 둘은 문제 제기에서 멈추지 않으며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비트코인은 총발행량을 코드로 박제해 누구도 변경할 수 없도록 만든 탈중앙화된 화폐를 제안한다. 신뢰할 사람을 찾지 말고, 신뢰가 필요 없는 구조로 가자는 대안이다. 기독교는 구원의 방법으로서 인간의 공로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설계하고 예수가 완성한 구원의 길 곧 믿음을 유일한 구원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어떤 면에서는 둘 다 너무 심플하고 확실해서 오히려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라는 의심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복음전도와 오렌지필이 특히 어려운 진짜 이유는 사실 이 두 메시지가 각각 영적 생명과 육적 생존의 문제에 직접 닿아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우리들의 영적 생명의 문제를 다룬다. 존재의 근거와 삶의 궁극적 방향을 묻는다. 그리고 돈은 육적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돈은 당장의 삶, 가족의 안전, 그리고 미래에 대한 대비와 연결된다. 이는 그가 현재 안전하다고 믿고 서있을 그 두가지 기반에 대해 의심을 갖게하는 불편한 메세지다.

상대방은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각자 나름의 대책을 세워 왔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재산에 대해서도 저마다의 철학과 전략을 마련하고 오랜 시간 공들여 인생과 재산을 쌓아왔다. 하지만 복음은 그 인생의 방향을 바꾸라고 말하고, 비트코인은 재산을 보관하는 장소와 기준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조금 더해 보자”가 아니라 “근본을 옮기자”는 제안이기에, 방어 반응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때로는 과도한 반감을 가지거나 우리들을 조롱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복음전도와 오렌지필을 포기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복음과 비트코인을 거부하는 누구일 지라도 그에게 복음과 비트코인이 필요함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라면 더욱 그렇다. 한편 복음을 전하거나 오렌지필을 전할 때, 듣는 이가 마침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그 기쁨은 내가 처음 복음을 믿었을 때, 그리고 처음 비트코인의 본질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처럼 나를 설레게 한다.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하다. 그래서 전도는 의무이기 이전에, 되살아나는 기쁨이 된다. 인생을 바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나 츤데레처럼 뉴비들에게는 살갑게 비트코인을 알려주는 비트코인 OG들의 마음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롱과 오해, 때로는 노골적인 핍박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복음전도와 오렌지필을 쉽게 멈추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것이 단순한 의견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직결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대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복음전도와 오렌지필은 언제나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사명으로 받아들인 이들 때문에, 오늘도 복음과 비트코인은 계속 전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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