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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실재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로마서 1:20)

사람은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신뢰한다. 눈에 보여야 안심하고, 손에 잡혀야 믿음을 갖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볼 수 없고 증명되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 비트코인을 처음 접한 사람들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실체도 없는 숫자가 어떻게 돈이 되는가.” 놀랍게도 이 두 질문은 매우 닮아 있다. 하나님과 비트코인은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해 있지만, 보이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살아 움직인다는 점에서 깊이 닮아 있다.

성경도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한다(1).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숨겨두신 적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먼저 만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다고 증언한다. 밤하늘의 별, 질서 있게 반복되는 계절, 생명의 정교한 구조, 우주의 광대함과 정확한 법칙은 우연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과학자들은 은하를 바라보고 세포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설계한 분이 있는 것은 아닌가. 창조 세계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아 자신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법은 사람을 통해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일하신다.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하는 모습,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직을 택하는 선택,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붙드는 믿음, 인생의 성공보다 복음전파와 교회를 향한 헌신등은 단순한 성격이나 도덕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변화가 담겨 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으로 네 믿음을 보이라”고 말한다. 믿음은 생각과 마음안에만 머물지 않으며 반드시 삶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이다. 비트코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에 쥘 수도 없고 금고에 넣을 수도 없다. 특정 회사의 서버에 저장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쉬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수많은 노드가 동시에 장부를 검증하고, 채굴 장비가 밤낮없이 연산을 수행하며, 누구의 허락도 없이 거래가 이루어진다. 해마다 늘어나는 사용자와 개발자, 결제 시스템과 커뮤니티는 이 네트워크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구조임을 증명한다.

비트코인은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주장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사람들이 사용하고, 지키고, 참여하고, 책임지기 때문에 실재한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화폐는 의미를 잃고,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 네트워크는 멈춘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조용히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공통점이 드러난다. 하나님도 비트코인도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고, 비트코인은 참여자들의 행동을 통해 유지된다. 교회 공동체가 없으면 신앙은 개인의 취향으로 흩어지고, 네트워크 참여자가 없으면 비트코인은 단지 코드로 남는다. 둘 다 관계와 책임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하나님을 증명해 보라”고 말하고, 비트코인을 향해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미 수많은 보이지 않는 것들 위에서 살아간다. 전기, 인터넷, 법, 신용, 금융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모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와 개인의 삶을 지탱한다. 실체란 형태가 아니라 영향력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비트코인은 글로벌 금융 질서를 변화시킨다. 이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실재성이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가 있다. 약속을 지키시는 분,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확신이 성도의 삶을 지탱한다. 비트코인 또한 신뢰(Trustless trust) 위에 세워진 시스템이다. 코드로 박제되어 발행량이 고정된 구조, 임의로 바꿀 수 없는 규칙, 투명한 장부, 검증 가능한 거래 시스템이 신뢰를 만든다. 

살아 있는 것은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살아있음이 드러난다. 나무가 살아 있으면 열매를 맺고, 강이 살아 있으면 흐르며, 사람이 살아 있으면 숨을 쉰다. 믿음이 살아 있으면 삶이 변하고, 비트코인이 살아 있으면 네트워크가 움직인다. 억지로 존재를 주장할 필요는 없다. 이미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과 비트코인이 동일하지 않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비트코인은 인간이 만든 도구이다.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이 둘은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나는 무엇에 내 삶을 맡기고 있는가. 나는 어떤 가치 위에 서서 살아가는가.

신앙은 삶으로 증명되고, 비트코인은 참여로 증명된다. 둘 다 관객이 아니라 책임 있는 참여를 요구한다. 자연을 통해, 사람을 통해, 질서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낸다. 네트워크와 코드와 공동체를 통해 비트코인은 자신이 실재함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운영하시고 만질 수 없지만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거래를 검증하고 전파하며 블록을 채굴한다. 조용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말보다 삶으로, 주장보다 움직임으로 증명된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과 세계를 통해 일하고 있고, 비트코인은 오늘도 전 세계에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실재에 대한 가장 분명한 증거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 속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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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실만큼 인간의 연역과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분이다. 그 분은 인간의 인지와 지각의 영역을 초월하여 실재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인지와 지각 능력안에 완전히 포착될 수가 없다. 누군가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다 한들 그것은 그의 전부일 수 없고 그의 소리를 들었다 한들 그것은 결코 그가 말하는 메세지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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