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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죄인, Trustless trust]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성경은 인간에 대해 놀랄 만큼 단호한 진단을 내린다. 인간은 예외 없이 모두 죄인이라는 선언이다. 이는 단지 몇몇 악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며, 예수님은 행동뿐 아니라 마음으로 품는 죄까지도 죄라고 말씀하셨다. 이 기준 앞에서 죄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에 매인 존재이며,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도 힘도 우리 안에는 없다. 그렇기에 성경은 구원이 반드시 ‘우리 밖으로부터’ 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정반대의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우리는 신뢰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국가는 신뢰할 수 있고, 은행은 믿을 만하며, 중앙은행은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 신뢰는 언제나 완전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금융 위기는 그 사실을 증명한다. 경제 위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무분별한 통화 발행과 그 권한을 쥔 소수의 금융 엘리트들이 존재했다.

문제는 구조다. 그 자리에 누가 앉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 해도, 권력은 결국 부패하게 되어 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죄성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꿰뚫는다. 인간은 신뢰의 대상이 되기에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다.

이 지점에서 비트코인의 출발점은 성경의 인간 이해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Satoshi Nakamoto 는 인간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시스템을 설계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자”가 아니라, “신뢰가 필요 없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트코인이 말하는 Trustless Trust다. 충분히 신뢰할 수 있으려면, 그 기초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제거되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통찰이다.

비트코인이 이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은 작업증명이다. 누가 장부를 기록할 권한을 갖는가는 도덕성이나 지위가 아니라, 이 네트워크를 위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지불했는가로 결정된다. 선한 말이나 권위가 아닌, 물리적 비용을 통해 검증되는 질서다. 이는 인간이 언제나 이기적으로 행동함을 전제하고 이를 통해 시스템을 제어하고 동작되게 하는 방식이다.

성경이 인간을 죄인이라 진단하며 외부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듯, 비트코인은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을 전제로 하여 신뢰가 필요없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제시한다. 두 세계관은 서로 다른 영역에 서 있지만, 인간 이해에 대한 출발점 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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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toshi Nakamoto: 2008년 10월 비트코인 백서를 통해 비트코인 시스템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실존 인물이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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